손
너는 머리보다 먼저 깨어 늘 머리를 지켜 왔다.
머리는 생각만 하고 도무지 움직이려 하지 않을 때도
너는 몸을 던져 궂은일을 도맡아 왔다.
지금은 머리들만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손, 너를 기리고 찬양하는 날은 분명히 온다.
너도나도 머리를 찾아 아우성이지만
네가 계속 움직이는 한
세계는 결코 허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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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상 화백이 최병수에게 바치는 시 '손'
최병수는 "한열이를 살려 내라"는 걸개 그림으로 유명한 민중미술가이다.
언젠가는,
나도 메마른 머리 말고,
뜨거운 손이 이끄는 길을 뚜벅뚜벅 걸을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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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열이를 살려 내라 episode
최병수는 목수였다. 목수 일을 다니는 틈틈이 연세대의 '만화 사랑' 동아리 학생들과 어울려 그토록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곤 했다. 그 동아리에서 이한열의 얼굴도 잠깐 보게 된다.
1987년 봄. 공안 정국이 조성된다. 장기 집권의 음모를 노골화 한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가 단행되고, 그 와중에 서울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학생 데모가 격렬해졌다. 그리고 6월 10일, 전투환 정권을 규탄하는 대규모 '6.10 대회'가 열렸다. 경찰은 데모 진압을 위해 최루탄을 과도하게 사용했고, 그날 집회에서 이한열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고 만다.
이튿날, 이한열이 피를 흘릴 채 친구의 부축을 받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중앙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로이터통신 기자가 찍은 사진이었다. 최병수는 그 기사를 중앙일보에서 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학생임을 안 순간 그는 둔기로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신문을 오려내 근처의 약국으로 달려갔다. 약사에게 다짜고짜 신문을 내밀며 이 친구가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약사는 머리를 저었다. 그는 곧바로 이한열이 입원한 신촌 세브란스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경찰과 학생들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 그는 멀리서 병원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신문의 사진을 오려서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것을 나무판에 조각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서걱서걱 나무판에 전해졌다. '한열이를 살려 내라!' 글귀를 간절한 마음인 양 새겨 넣었다. 판화로 찍어 낸 그 그림을 연세대 만화 사랑 동아리 후배가 가져갔다. 유가협과 민가협 어머니들이 그 그림을 가슴에 달고 집회를 했다. 여기저기서 그림이 더 없느냐고 찾는 일이 벌어졌다. 수백 장을 더 찍어야 했다.
어느 날, 연세대 총학생회에서 그를찾았다. 학생 하나가, 그림을 크게 그려서 건물에 걸자고 제안했다. 그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만화 사랑 동아리 학생들과 작업에 들어갔다. 바람에 잘 견디는 질긴 텐트 천에, 먹줄을 퉁겨서 그렸다. 이튿 날 새벽, 가로 7.5m에 세로 10m의 대형 그림이 완성됐고, 그림은 총학생회 건물 외벽에 걸렸다. 최초의 걸개그림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걸개 그림의 효시가 된 이 그림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 <참 아름다운 당신> 중, 큰 그림을 그리는 화가 최병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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